문종이 죽고 어린 나이의 단종이 왕위에 등극하면서, 세종대왕때부터 이어져 오던 왕권과 신권의 조화된 정치에 혼란이 시작된다.
어린 단종에게 김종서 등과 같은 노련한 신하를 상대로 왕권을 확립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왕족파인 수양대군을 견제하기에도 또한 무리가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신권을 지켜려는 자와 왕족파인 수양대군과의 분쟁인 계유정난이 일어난다. 이 사건으로 수양대군은 김종서와 황보 인, 그리고 왕위 경쟁자인 안평대군까지 몰아낸다.

(- kbs 드라마 사육신
: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전에 제작한 작품으로 사육신에 대한 북한측의 평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결국은 1455년 수양대군은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한다.
- 수양대군은 세종대왕의 둘째아들이다. 만약 형인 문종이 어린 아들 단종 대신에 동생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계승했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태종 때의 왕권싸움과는 다른 성격의 단종폐위사건... 피비린내 나는 왕권싸움을 한 태종은 셋째아들인 세종대왕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식견을 가졌지만 문종은 그렇지 못했다.
비록 아들은 아니지만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못한 문제는 획일적인 유교제도, 즉 장자상속제도와 문종의 아버지로써의 욕심에 있었다.
왕위를 찬탈당한 단종을 복위시켜려는 움직임은 문종에게 고명을 받은 집현전 학사를 중심으로 일어난다.
그러나 사전에 복위운동이 드러나 좌절되면서 연류된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한다.
그 중심인물에 성삼문, 박팽년, 이개,유성원, 하위지, 유응부의 6명과 함께 김문기가 있었다.
사육신(死六臣)은 성삼문, 박팽년, 이개,유성원, 하위지, 유응부 등 6명으로 여겨져왔으나, 사육신에 대한 새로운 주장에 나오면서 - 단종복위운동의 중요한 군사부문을 담당했고, 끝까지 절개를 지킨 김문기 선생이 추가되었다.
사육신묘는 지하철 노량진역에서 내려 남부고시학원을 지나 노량진 수산물 시장입구쪽을 지나면 있다.
공무원 시험학원으로 유명한 한교고시학원 맞은편쪽에 위치해있다.
우연히 일치인지... 공무원 시험교육기관이 많다보니 자연적으로 공무원수험생들이 머리식히려 많이 가곤한다. 사육신의 그 정신을 한번씩은 되뇌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몇년전에 아는 형님들과 처음 함께 간 사육신묘공원...
입구에서 2~3분 올라가면 절이 보이고 일곱분의 묘지가 안치되어있다.
산 정상에서는 역사의 슬픔은 뒤로한채 한강이 유유히 흐르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 참고- 생육신(生六臣)
- 한자의 뜻데로 죽지는 않았지만 단종폐위에 대한 세조의 부당함을 인식하고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절개를 지킨 여섯명을 말한다.
: 비운의 천재 김시습, 단종 승하후 영월에서 3년장례를 치룬 원호, 그외에 이맹전, 성담수, 조려, 남효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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